로베르토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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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로베르토 1세는 부르봉파르마 가문 출신으로 파르마 공국의 마지막 공작이다.
2. 생애[편집]
토스카나 대공국의 수도 피렌체에서 파르마 공작 카를로 3세와 루이즈 다르투아(Louise d'Artois 1819~1864)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산책 나간 사이에 암살당하면서 불과 6세의 나이로 파르마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11세에 이탈리아 통일 전쟁으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군대가 입성하면서 파르마 공국을 잃고 폐위당했다. 파르마 공국은 토스카나 대공국, 모데나 레조 공국, 교황청 볼로냐 일대와 연합하여 중부 이탈리아 연합주(Province Unite del Centro Italia)를 형성해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합병되었고,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은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을 선포했다.
비록 파르마 공국을 잃었으나 로베르토 1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 제국 빈 근처 슈바르차우 암 슈타인펠트(Schwarzau am Steinfeld)에 있는 성에서 여생을 보냈고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샹보르 성에 이르는 12채의 성을 소유하면서 잘먹고 잘 살았다.
1869년 4월, 로마에 망명중이던 양시칠리아 왕국 국왕 페르디난도 2세의 딸 마리아 피아(Maria Pia di Borbone-Due Sicilie 1849~1882)와 결혼했다. 둘은 같은 보르본 왕조 출신으로 가까운 친척 사이였고[1] 12명의 자녀를 얻었으나 대부분 일찍 죽거나 지적 장애를 앓았다. 맏딸 마리아 루이사는 불가리아 왕국의 초대 차르 페르디난트 1세와 결혼해 보리스 3세를 비롯한 2남 2녀를 두었다.
마리아 피아가 1882년 출산 중 사망하자 1884년 10월, 전 포르투갈 왕국 국왕 미겔 1세의 딸 마리아 안토니아(Maria Antónia de Bragança 1862~1959)와 결혼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와 결혼한 부르봉파르마의 지타 공녀가 바로 로베르토 1세와 마리아 안토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펠릭스는 룩셈부르크 대공녀 샤를로트와 결혼해 장 대공[2] 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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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가까운 공통조상은 양시칠리아 국왕 프란체스코 1세로, 프란체스코 1세 기준으로 하면 5촌간이다. 로베르토 1세의 외할머니 마리아 카롤리나가 마리아 피아의 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의 이복누나다. 카를로스 4세 기준으로는 7촌으로, 로베르토 1세의 증조할머니 마리아 루이사가 마리아 피아의 할머니인 마리아 이사벨의 언니다.[2] 다만 장 대공은 아들들의 결혼을 귀천상혼이라고 이의제기한 부르봉파르마 가문과 싸우고 관계를 끊어버리면서 어머니의 성씨인 나사우바일부르크를 계속 쓰기로 했다. 나중에 화해하긴 했지만 어쨌든 룩셈부르크 대공가는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을 뿌리로 여기고 있다.